일본 해상자위대는 지금도 욱일기를 군기로 사용하고 있다.
욱일기는 일본 제국주의 시대의 군기로서 2차세계대전 이후 사용이 금지된 나치 독일의 하켄크로이츠와는 달리 전쟁이 끝나고도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다.
일본은 욱일기를 앞세워 2차세계대전 이전부터 제국주의의 힘의 상징으로 사용했고, 지금도 그 힘을 다시 노리는 원천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런데 이런 욱일기가 제국주의와는 별로 관계도 없고, 욱일기를 앞세워 침략을 했던 다른 나라는 별로 신경도 안쓰는데, 우리나라만 욱일기를 크게 적대시한다는 글이 있어 퍼와봤다.
11월에 있을 일본의 관함식에 우리나라를 초청했다는 기사가 나오면서부터 욱일기에 대한 논란이 커지고 있는데, 윤씨의 현재 상태를 봐서는 한국을 통째로 가져다 일본에 바칠 것 같은 분위기라서 우리 해군 함정을 보낼 것만 같다.
가서 직접 읽어볼 필요도 없지만, 보고 싶으면 아직도 일본 군국주의 타령인가?[김원율 시민기자]
아래는 해당 글의 전문
8월 21일 SBS 단독보도에 의하면 일본은 관함식 날짜를 11월 6일로 확정하였고 우리나라도 한미일 안보협력강화와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위하여 참가를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5년 아베 총리 당시 일본에서 열린 관함식에 박근혜 정부는 대조영함을 파견한 바 있다. 문재인 정부 당시인 2018년 제주에서 열린 국제 관함식에는 욱일기를 당시 정치권과 시민단체에서 문제 삼자 일본이 불참을 결정한 바 있다.
욱일기는 1870년 이후 명치유신 시기에 일본 육군을 창설하면서 자국기와는 별도로 군대를 상징하는 군기(軍旗)로 만들어진 것이다. 욱일기는 군국주의 시대의 일본 군대뿐만 아니라 전후 자위대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런데 일본 자위대는 전후 70여년간 일본 밖에서는 총 한번, 함포 사격 한 발도 쏜 적이 없다.
일본 군국주의의 피해를 입은 한국과 중국이 욱일기를 바라보는 시선이 다른 나라와 같을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유독 한국만이 욱일기에 대하여 이토록 민감한 반응을 보이며 사사건건 시비하는 저의를 이해하기 어렵다. 그리고 욱일기의 문양은 해가 떠오를 때 햇살이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문양으로 희망과 번영을 상징한다고 해서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문양이다. 일본 아사히 신문도 회사의 로고로 이러한 문양을 쓰고 있으며 이에 대해서 아무런 비판도 하지 않는다. 알다시피 일본 아사히 신문은 일본 군국주의의 잔재에 대하여 가장 비판적인 신문이다.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 군국주의의 군대와 교전 당사자도 아니었다. 이에 비하면 중국은 아시아에서 일본과 가장 큰 교전 당사국이었으며, 1937년 만주 노구교(盧溝橋) 사건 이후 본격적인 전쟁에 돌입한 후 1945년 종전까지 전사 352만, 부상 160만, 민간인 사망 1,700만명에 이르는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그런데 중국은 욱일기에 대해서 별다른 문제 제기를 하지 않는다.
유독 한국만이 욱일기뿐만 아니라 욱일기 문양에 대해서도 일본 군국주의 상징 운운하면서 과민한 반응을 보인다. 영국의 리버풀 축구팀이 2019년 클럽 월드컵에서 우승하고 트위터 계정에서 욱일기와 비슷한 문양을 올리자 일분 군국주의의 상징이라면서 네티즌이 벌떼처럼 몰려가 비난 댓글을 달았다.
2018년 10월 제주도에서 열린 국제 관함식에서 일본 자위대의 군기(軍旗)인 욱일기(旭日旗) 부착을 시민단체나 정치권에서 군국주의의 상징이라고 트집을 잡아 전술한 바와 같이 자위대의 입항이 결국 무산되었다. 당시 한국 해군도 욱일기에 대하여 아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2019년 4월 열린 중국의 국제 관함식에서 중국은 일본 자위대의 욱일기에 대하여 어떠한 문제도 제기하지 않았다.
한때 일본이 대동아 공영권을 주장하며 아시아를 전쟁의 질곡으로 몰아넣었고 이에 대해서는 일본도 여러 차례 사과한 바 있다. 1993년 당시 호소카와 모리히로 수상이 이른바 대동아전쟁을 일컬어 “잘못된 전쟁이었다”고 말하여 군국주의의 잘못을 스스로 인정하기도 하였다.
문재인은 국민을 갈라치기 해서 어느 일방을 다른 일방에 대하여 증오하게 함으로써 이를 국정의 동력으로 삼는 비열한 행태를 일삼아 왔다. 국민을 친일과 반일로 갈라치기 하고 일본에 대하여 유화적인 입장을 위하는 자유 우파에 대하여 ‘토착왜구’라는 프레임을 덧붙여 공격하는 천박한 정치 · 외교행태를 보여왔다. 문재인은 일본의 수출규제 당시 이순신 장군의 “소신에게 아직 12척의 배가 있습니다.”라는 말을 꺼내 들어 대일 결사 항전의 의지를 불태우기도 하고 조국은 죽창가를 자신의 SNS에 올렸다.
백범 김구 선생은 1945년 해방되자 “이제부터는 대한민국에 친일파가 많이 생겨나야 한다.”고 말하였다. 신생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의 일원으로 부국강병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본과 기술이 월등한 일본과 손잡아야 한다는 것을 내다본 선견지명이었다. 해방된 지 80년이 가까워오는데 아직도 사고는 100년 전에 머물러 언제까지 일본 군국주의 타령이나 하고 있을 예정인가.
윤석열 정부는 좌고우면하지 말고 강제징용 문제는 일본기업의 참여 같은 문제에 매달릴 게 아니라 보상할 부분이 있으면 우리 정부 단독으로 피해자에게 보상하기 바란다. 그리고 더 이상 일본 군국주의의 망령에 사로잡혀 주저할 것이 아니라 국제 관함식에 당당하게 참가하기 바란다. 민주당의 시대착오적인 ‘토착왜구’ 프레임에 더 이상 발목 잡혀서는 안 될 것이다.
김원율 시민기자
이 글에 따르면 욱일기는 국가의 깃발이 아니라 군기로 사용된 것일 뿐이라며 일본 제국과는 상관이 없단다.
또한 2차세계대전 당시 우리는 일본과 직접 교전을 한 당사자가 아니고, 2차세계대전 이후 일본군은 총이나 포를 한번도 쏘지 않았다면서 욱일기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는데, 우리나라는 당시 일본의 식민지였고, 식민지 주민으로 욱일기를 든 일본 제국주의 군대의 억압을 받았었다.
또한 국외에서는 독립군이 2차세계대전 이전부터 욱일기를 든 일본군들과 많은 교전을 하기도 했다.
다른 나라가 욱일기에 신경을 쓰든 안쓰든 그것은 그 나라와 그 나라 국민의 사정일 뿐 우리나라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일본이 여러 차례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에 대해 사과를 했다는데, 위의 글에서 1993년 호소카와 수상 이외에 사과를 한 수상이나 일왕이 있었는가?
얼마전까지 9년이나 장기 집권을 했던 아베는 침략을 인정하지 않고 일본이 당한 원폭 피해만 매번 주장했고, 2차세계대전 일본 제국주의의 전범의 위패를 보관하는 야스쿠니 신사에 매년 공물을 바치고 그들의 공과 업적을 숭상하며, 다시 그런 제국을 만들기 위해 평화헌법을 개정하려 했었다.
또한 바로 옆 나라면서 공존을 위해 서로 협력해야 되는 한국에 대해, 어떻게든 경제와 사회를 무너뜨리려 그리도 힘을 쏟았었다.
아베를 이어 집권한 스가나 기시다도 이전의 제국주의의 침략에 대해서는 입을 닫고, 우리가 알아서 기면 협력하겠다는 말이나 하고 있다.
이런 상황인데, 한국 사람이 저런 주장을 한다는게 진짜 어이가 없다.
저 글에는 또 김구선생 이야기로 친일파가 많아야 된다고 했다는데, 아래의 글을 한 번 보면 진짜 그런 말을 했는지에 대한 답이 나온다.
김구 선생이 “친일 분자는 많을수록 좋다”고 했다고?
김진홍 목사(두레수도원)가 8월 18일 사랑의교회(오정현 목사)에서 설교한 내용 때문에 뭇매를 맞고 있다. 김 목사는 설교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치매 의혹을 제기하고 청와대에 주사파가 들어앉아 나라를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등 근거 없는 이야기를 했다.
김 목사는 한일 관계가 악화하는 모습을 우려하면서 백범 김구 선생 예화도 들었다. 김 목사는 “김구 선생은 ‘친일 분자는 어떻게 처리해야 하느냐’는 신문기자 질문에, ‘반민족 행위를 한 사람은 법에 따라 처벌해야 하지만, 친일 분자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했다. 옳은 말 아닌가”라고 말했다. ‘반일’, ‘반일’ 할 게 아니라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고 했다.
이 내용은 최근 한일 갈등 상황에서 김진홍 목사가 자주 하고 다니는 말이다. 김 목사의 유튜브 채널 8월 7일 자 영상에는 <백범 김구 전집 8권>(대한매일신보사)을 인용하는 장면이 나온다. 김 목사는 책을 들어 보이며 “김구 선생님은 ‘민족 반역을 저지른 자는 법에 따라 처벌해야 한다. 그러나 친일은 많을수록 좋은 것 아닌가. 이웃 나라와 사이가 좋아야지, 친일이 반일로 가면 국가에 안 맞고 인류애에 안 맞는다’고 말했다”면서 “우리가 김구 선생님과 같은 마음을 가지면 좋겠다”고 했다.
김 목사는 <크리스천투데이>와 <뉴스파워> 등 교계 신문에 ‘친일 반일 극일’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여기서도 김구 선생 일화를 소개하며 “친일과 반일을 넘어 극일로 나가야 한다. 일본과 친하고, 일본 사람들이 우리보다 앞선 것은 열심히 배워 일본을 넘어서야 한다. 그것을 극일이라 한다”고 썼다.
“친일 분자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김구 선생 발언은 사실일까. 기자는 서울시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김 목사가 인용했다는 <백범 김구 전집 8권>을 직접 확인해 봤다. 1100쪽 분량 책에는, 임시정부의 복귀, 정부 수립, 반민특위, 신탁통치 등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책에는 김구 선생이 언론과 인터뷰한 내용도 다수 들어 있었다.
전집 8권 73쪽에는 친일파와 민족 반역자에 관한 대목이 나온다. 기자가 질문하고 김구 선생이 답한다.
문: 통일전선에 있어 친일파와 민족 반역자에 대한 문제는?
답: 통일전선을 결성하는 데 있어 불량한 분자가 섞이는 것을 누가 원하랴. 그러나 여기에는 두 가지 일이 있을 줄 안다. 위선爲先 통일하고 불량분자를 배제하는 것과 배제해 놓고 통일하는 것의 두 가지가 있을 것임으로 결과에 있어 전후가 동일할 것이다.
문: 그러나 악질분자가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면 통일 후의 배제는 혼란하지 않은가?
답: 여하간 정세를 모르니 대답할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은 중대 문제인 만큼 경솔히 말할 수는 없겠다. 전全 민족에게 관한 것인 만큼 신중히 해야만 하겠다.
김진홍 목사가 주장한 “민족 반역을 저지른 자는 법에 따라 처벌해야 한다. 그러나 친일은 많을수록 좋은 것 아닌가”라는 이야기는 없었다. 오히려 김구는 민족 반역자뿐 아니라 친일파, 친일 분자에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1945년 12월 19일 서울운동장에서 개최된 임정 개선 환영 대회에서 김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극소極小의 친일파 민족 반도를 제한 외에 무릇 한국 동포는 마치 한 사람 같이 굳게 단결해야 합니다. 오직 이러한 단결이 있은 후에야 비로소 우리의 독립 주권을 창조할 수 있고 소위 38도선을 물리쳐 없앨 수 있고, 친일파 민족 반도를 숙청할 수 있습니다.”
<동아일보> 1945년 12월 30일 자 보도에 따르면, 김구는 “협잡 정객과 또 친일 분자 민족 반역자들을 숙청해야겠습니다. 그것은 대의명분상으로만 그럴 것이 아니라 실제에 있어서 그들이 통일을 방해하고 있는 사실이 다대한 까닭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최소한도라도 죄악이 만만하여 용서할 수 없는 불량분자만은 엄징하지 아니하면 아니될 것입니다”고 말했다.
김구는 지속적으로 친일 분자 타도를 외치고 반민특위를 지지했다.
“우리 동양의 정치 윤리는 무엇보다도 대의명분을 많이 주장한다. 이 대의명분과 민족정기를 내세우지 않고서는 민족 질서 혁명 기율은 바로잡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 민족의 반역 친일 분자들은 그대로 둘 수 없는 것이다.” (<호남신문> 1948년 10월 3일)
“친일 반역 분자들에게 악형을 당하고 생명까지 빼앗긴 수많은 선열들의 영령과 아직도 고통스럽게 살아 있는 독립운동자들은 반민자들을 단호 처단하려는 특위의 활동을 지지할 것이며, 인민들도 이것을 찬양할 것이니 무릇 일을 방해하려는 행위는 청산하여야 할 것이다.” (<조선일보> 1949년 2월 19일)
김진홍 목사 말과 달리, <백범 김구 전집 8권>에는 친일하고 서로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는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다. 백범김구기념관 한 관계자도 8월 21일 기자에게 “요청에 따라 책을 살폈지만, ‘친일해야 한다’는 내용은 찾을 수가 없었다. (김진홍 목사 발언은) 문제의 소지가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김진홍 목사에게 연락을 취했다. “친일 분자는 많을수록 좋다”는 이야기를 찾을 수가 없다는 기자 말에, 김 목사는 “그런가”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정확히 몇 쪽에 나오느냐고 묻자, 김 목사는 “그건 직접 찾아보라”고 한 뒤 전화를 끊었다. 다시 전화하자, 김 목사의 전화기는 꺼져 있었다.
[보강]
김진홍 목사가 이야기한 “친일 분자는 많을수록 좋다”는 발언의 출처는 <백범 김구 전집 8권>이 아니라 2017년 2월 <월간조선>에 나온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장 주장인 것으로 확인됐다. 최 원장은 임시정부 출신들이 만든 한독당 산하 대한학생연맹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대동신문> 기자를 거쳐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최서면 원장은 <월간조선>과의 인터뷰에서 “김구 선생은 ‘일본이 바로 이웃에 사는데 친일파는 많을수록 좋다. 없다면 만들어야지, 그게 무슨 소리냐. 내가 말한 것은 반민족적 친일파를 처단하라고 한 것이지, 언제 친일파를 처단하라고 했느냐. 내가 중국에서 왔다고 친중파를 무조건 좋아하는 줄 아는 모양인데, 친중파도 아편장수 같은 반민족적 친중파는 처단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가해자가 먼저 사과를 하고, 피해에 대해 배상을 해야 피해자가 사과의 진정성이나 배상의 정도를 보고 가해자를 용서할지 생각을 해보는 것이지, 피해자가 먼저 용서를 해야 가해자가 ‘용서를 구하는 것을 생각해볼까?”하는건가?
세상 어디에도 피해자가 먼저 용서하는 경우는 없다.
가해자가 먼저 반성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지 않으면.
진짜 토착왜구가 쓴 글인 것 같다.
나치 독일의 하켄크로이츠는 나치 독일의 패망과 함께 사용 금지가 되었는데, 하켄크로이츠는 나치 독일 이전에도 많은 지역에서 여러 용도로 사용되던 깃발이었지만 독일 제국주의에서 사용했다는 이유로 전세계적으로 사용이 금지되었다.
하지만 일본 제국주의가 사용한 욱일기는 일본 제국주의가 패망했음에도 아무런 제약도 없이 지금도 잘 쓰이고 있으며, 가끔 이런저런 기업에서도 욱일기를 상품에 사용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
저 글을 쓴 사람은 나치 독일의 하켄크로이츠에 대해서는 뭐라할지 궁금하다.